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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부라는 이름의 착취 |
강원도의 한 복지관 주방에서 4년 동안 수백 명의 밥상을 책임졌던 조리사입니다. 어제는 제가 왜 몸이 망가지면서까지 내용증명을 보내야 했는지 그 통증의 기록을 전해드렸는데요. 오늘은 그 통증보다 더 지독했던, '복지'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부당한 노동의 실체를 폭로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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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들어오는 많은 양의 식자재 |
1. 100리터 봉투 6개, 600리터의 쑥이 가져온 '재앙'
봄이 오면 사람들은 파릇파릇한 쑥 향기를 맡으며 설렌다고 하죠? 하지만 저에게 봄은 '쑥 지옥'의 시작이었습니다. 어느 날, 자원봉사자분들이 커다란 100리터 쓰레기봉투 6개를 들고 주방으로 들어오시더군요. 안에는 산에서 직접 뜯어온 쑥이 가득했습니다.
겉보기엔 훈훈한 나눔이었지만, 그 뒷감당은 오롯이 주방의 몫이었습니다. 600리터에 달하는 쑥을 누가 다듬고 씻었을까요? 저와 동료 조리사, 영양사 셋이서 매달려야 했습니다. 뜨거운 가마솥 앞에서 쑥을 삶고 건져서 씻고, 그걸 또 일일이 소분해서 봉투에 담았습니다. 말이 좋아 소분이지, 1년 치 행사용 떡을 만들기 위한 '공장 라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칭찬은 뜯어온 사람들이 받고, 생색은 기관이 내고, 조리사의 허리와 손가락 마디마디는 그렇게 쑥 향기와 함께 타들어 갔습니다.
2. 밤 10시까지 이어진 '상추 물김치 공장'과 80대 노모
여름은 더 가관이었습니다. 후원물품으로 들어오는 로메인 상추와 유럽 상추가 끝도 없이 밀려왔습니다. 처음엔 사골을 고며 남는 시간에 한 통 담그던 게, 나중에는 아예 '물김치 공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상추를 다듬고 씻어 담는 작업을 영양사님과 밤 10시까지 이어가야 했습니다. 퇴근 시간은 이미 훌쩍 지났지만, '아끼는 게 미덕'이라는 관리자의 논리 앞에 우리의 휴식권은 증발했습니다. 그때 관장님은 당신의 80대 노모를 주방으로 보내셨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도와주러 오셨다"면서요. 80대 어르신이 옆에서 상추를 만지고 계시니,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저희는 힘들다는 소리 한마디 못 하고 입을 다물어야 했습니다. 도와주러 오신 게 아니라, **우리의 고통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려는 '무언의 압박'**이었습니다.
3. 찬밥 한 톨도 돈으로 바꾸는 '식혜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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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관 냉동실에는 항상 찬밥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배식하고 남은 밥이 아깝다며 모아둔 거죠. 기관은 이 밥으로 식혜를 만들어 팔았습니다. 식혜 한 번 담그면 50병이 넘게 나옵니다. 엿기름을 치대고, 삭히고, 끓이는 중노동을 조리사들이 감내해야 했습니다.
제가 퇴사하던 마지막 날까지도 저는 밥통에 밥을 앉혀두고 나왔습니다. 남은 동료들에게 미안해서였죠. 결국 동료들은 제가 나간 빈자리를 메우며 새벽 7시에 출근해 그 식혜를 달였다고 합니다. "기부금 모아야 한다"는 명분 아래 조리사들의 새벽잠과 휴식은 너무나 값싸게 취급되었습니다. 우리가 만든 건 달콤한 식혜가 아니라, 누군가의 생색내기를 위한 **'착취의 결과물'**이었습니다.
4. 사람이 없는데 왜 식당은 돌아가야 합니까?
주방 인력이 부족해 3명이 할 일을 2명이서 꾸역꾸역 해내고 있을 때, 동료 영양사님이 걱정스레 묻더군요. "어떡하나, 그래도 장수식당은 돌아가야지..."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억지로 돌아가는 식당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직원들의 고혈을 짜내어 유지하는 시스템은 복지가 아닙니다. 저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왜 그래야 하는데요? 우리가 이렇게 힘든데, 사람이 없는데 왜 식당이 돌아가야 합니까?" 멈춰야 비로소 보입니다. 우리가 억지로 구멍을 메워주니까 기관은 절대로 사람을 더 뽑아주지 않는 것입니다.
5. '호구'가 아닌 '주인'으로 서기 위한 결단
남의 집 냉장고를 채워주고 기부금을 만들어주느라 제 몸과 마음은 텅 비어버렸습니다. 저는 이제 이 '식재료 지옥'에서 탈출했습니다. 4년 동안 사골 고고 식혜 달이던 그 지독한 끈기로, 이제는 제 인생의 진짜 가치를 찾아보려 합니다.
혹시 지금도 "나 아니면 이 일이 안 돌아갈 텐데" 하며 무리하게 버티고 계신 분들이 있나요? 여러분, 여러분이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갑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아프면 여러분의 세상은 멈춥니다. 이제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벗어던지고, 여러분 자신의 인생을 먼저 요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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